▣ 모성보호 3법이란?
2024년 9월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안)」, 「근로기준법(안)」, 「고용보험법(안)」이 의결되었는데, 이를 모성보호 3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육아지원 3법이라고도 한다. 부모의 공동육아 또는 맞돌봄 문화를 장려하고, 육아환경을 개선해 자녀돌봄에 따른 경력단절을 방지하고자 하는 대책이라고 보면된다. 모성보호 3법의 핵심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의 개정이다. 이 법률의 개정을 통해 ▲배우자 출산휴가 확대(10일→20일), ▲부모 각각 3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하는 경우 등에 대한 육아휴직기간 확대(1년→1년6개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가능 대상 자녀 연령 상향(8세→12세), ▲난임치료휴가 기간 확대(3일→6일) 등이 이루어졌고,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을 법률적으로 뒷받침하는 차원에서 개정된 것이다.
▶ 용두사미로 끝난 모성보호 3법
2024년 9월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의결된 모성보호 3법은 여야 합의처리된 것으로 오는 9월 26일 본회의에서 의결되면 바로 공포되고 시행된다. 모성보호 3법의 핵심 법률인 「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남녀고용평등법)은 수십명의 의원이 각자 의견을 담은 법안을 발의할 정도로 이목이 집중되었던 법안이다. 세계 최저수준의 합계출산율 극복을 위해 파격적인 제안을 한 국회의원도 상당수 있었다. 그런데 환노위에서 남녀고용평등법(대안)이 의결되면서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34건의 같은 법안은 <대안반영폐기>되었는데, (대안)으로 의결된 내용을 보면 다소 실망스럽다. 정부가 제시한 안 그대로다. 이럴려고 그 난리법석을 떨었나...싶을 정도다.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통해 제안한 파격적인 조치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용두사미로 끝날 판이다.
▣ 모성보호 3법의 개정 과정
모성보호 3법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슬러 지난 6월로 되돌아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모성보호 3법의 기본 뼈대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라는 정부 조직에서 만든 것인데, 그 윤곽을 발표한게 지난 6월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저출생추세반전대책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직속기구로 정부가 추진하는 저출산 고령화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다. 그냥 정부조직으로 보면된다. 이 위원회에서 지난 2024년 6월 19일, 저출생 추세반전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주요 내용은 아래 인포그래픽으로 대신한다.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 정부(안)을 의원입법으로 발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저출생 종합대책 중 법률개정이 필요한 사항은 원래 정부가 법안을 제출해야 하나,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이 대신 발의하는 형식을 선택했다.(이를 청부입법이라고 한다) 정부의 종합대책 발표 다음날인 6월 20일에, 김정재 의원이 대표발의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8명 전원이 공동으로 발의했다. 이는 김정재(안)이 정부여당(안)이라는 의미다.
다소 의아한 점은, 남녀고용평등 법률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관 법률인데, 왜 환노위 위원이 대표발의를 하지 않고, 국토교통위 소속 김정재 의원이 발의했을까이다. 다만, 크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정부(안) = 김정재(안) = 환노위 의결안
재미있는 현상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과 관련하여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즉 정부(안)과 김정재 의원의 발의(안)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의결된 대안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아래 <표>는 정부(안), 김정재(안), 환노위 의결(안)을 비교한 것이다.
구분 | 현행법률 | 정부(안) | 김정재(안) | 환노위 의결(안) |
배우자 출산휴가 | 10일 | 20일 | 20일 | 20일 |
(사용기한) | 출산후 90일 | 출산후 120일 | 출산후 120일 | 출산후 120일 |
(분할사용) | 1회 | 3회 | 3회 | 3회 |
(사용절차) | 청구 | 일정기간 이후 자동승인 | - | 고지 |
난임치료휴가 | 연간 3일 | 연간 6일 | 연간 6일 | 연간 6일 |
(유급휴가) | 최초 1일 | 최초 2일 | 최초 2일 | 최초 2일 |
육아휴직 | 1년 | 같은 자녀 대상 부모 모두 3개월 이상 사용시 육아휴직 6개월 추가 | 같은 자녀 대상 부모 모두 3개월 이상 사용시 육아휴직 6개월 추가 한부모 근로자 6개월 추가 |
같은 자녀 대상 부모 모두 3개월 이상 사용시 육아휴직 6개월 추가 한부모 근로자, 장애인 부모 6개월 추가 |
(분할사용) | 2회 | - | - | 3회 |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 대상: 8세 이하 또는 초등 2학년 이하 | 대상: 12세 이하 또는 초등 6학년 이하 | 대상: 12세 이하 또는 초등 6학년 이하 | 대상: 12세 이하 또는 초등 6학년 이하 |
(육아휴직 미사용 기간) |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기간에 가산 | 육아휴직 미사용시 최대 36개월 |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기간에 2배 가산 |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기간에 2배 가산 |
(분할사용) | 1회 3개월 이상 | 1회 1개월 이상 | - | 1회 1개월 이상 |
위 <표>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정부안과 김정재안은 대부분 동일하다. 그럴수 밖에 없는게,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김정재안은 정부안을 대신 발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심있게 봐야할 부분이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의결된 대안이다. 이 대안도 정부안, 김정재안과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의결되었음을 볼 수 있다.
▣ 국회의원들의 파격적인 제안은 어디로 갔나?
남녀고용평등법을 발의한 국회의원 중에는 육아휴직을 3년으로 늘리자는 제안(송언석, 이종배, 조인철)도 있었고, 2년(이수진, 김미애, 박홍배)으로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엔 그냥 정부안대로 1년 6개월로 의결되었다. 배우자 출산휴가의 경우 현행 10일에서 30일로 늘리자는 법안을 이수진, 한병도, 김장겸, 서범수, 송옥주, 박지혜 의원이 발의했지만 이 역시 별다른 쟁점 없이 20일로 확정되었다.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다양한 내용의 법안은 형식적으로는 '대안반영폐기' 되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폐기된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법안 심의는 상임위(특히 법안소위) 중심주의다
국회에서 법안심의는 상임위 별로 이루어진다. 남녀고용평등법은 환경노동위원회 소관 법률이다. 상임위 중에서도 법안심의는 법안소위 중심으로 진행된다. 소위에서 의결되면 사실상 전체회의에서는 무사통과다. 국회 환노위, 환노위 법안소위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발의(대안반영폐기)한 의원 목록은 아래와 같다.
환노위 위원 | 환노위 법안소위 위원 | 남녀고용평등법 발의(대안반영폐기) 의원 |
강득구(민) 김소희(국) 김위상(국) 김주영(민) 김태선(민) 김형동(국) 박정(민) 박해철(민) 박홍배(민) 안호영(민) 우재준(국) 이용우(민) 이학영(민) 임이자(국) 정혜경(진보) 조지연(국) |
김위상(국) 김주영(민) 김태선(민) 김형동(국) 박홍배(민) 우재준(국) 이용우(민) 정혜경(진보) |
강훈식, 김미애 김선교, 김위상 김장겸, 김정재 김희정, 모경종 박성훈, 박용갑 박정, 박지혜 박해철, 박홍배 서범수, 소병훈 송언석, 송옥주 이수진, 임이자 정성호, 조정훈 조지연, 진성준 한민수, 한병도 한정애, 홍기원 |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발의(대안반영폐기)한 28명의 의원(법안 건수는 34) 중 환노위 소속 위원은 6명이고, 이 중 2명만이 환노위 법안소위 위원이다. 사실상 이 6명을 제외한 22명의 의원은 법안을 발의는 했지만 법안심의 과정에서 발언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다. 다시 말해서 대다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발의 그 자체로 끝이다는 말이다. 다만, 그들이 챙기는 것은 <대안반영폐기>에 따라 법안 처리 실적이 1건 추가되는 것 뿐이다.
▶환노위 법안심사 소위 '회의록' 둘러보기
환노위에서 의결된 보성보호 3법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법안심사 소위 회의록의 일부를 살펴본다.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직접 발의하고, 환노위 법안소위 위원이기도 한 박홍배, 김위상 의원의 발언이다.
위원 | 2024년 9.11일 환노위 법안소위 회의록 |
박홍배(민) | "내용을 이렇게 해가지고 지금 여야·정부가 법안을 통과시키면 굉장히 기대하셨던 분들이 실망할 가능성이 굉장히 많다. 대체 뭐가 바꼈다는 거냐, 나랑 해당사항이 없네라고 생각하실 가능성이 너무 많다. 왜냐하면 차관님 말씀하신 것처럼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 자체가 10%밖에 되지않기 때문에 그게 올리려고 하는 목적이 있지만 현실상 그렇지 않은 경우에 결국은 이 법의 혜택을 받는 분도 너무 적을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정부나 우리 국회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하시게 되지 않을까 굉장히 큰 걱정이 됩니다." |
김위상(국) | "우선 급한 부분이 있는, 또 이 법을 기다리고 있는 분들이 많은 관계로 어쨌든 먼저 오늘 좀 통과시켜가지고 여기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기 때문에 이 부분을 노동부가 또는 우리 위원들이 조금 더 고민할 수 있는 기회도 이후에 있으니까 오늘 여기에 나온 제출된 이 법안은 원안대로 또 정부가 이야기하는대로 우선 수용을 하고 이후에 고민을 좀 더 했으면 좋겠다 하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대표적으로 두 위원의 발언을 보면, 환노위 법안소위 위원들도 이 모성보호 3법이 당초 기대했던 수준에 매우 미흡함을 인정하면서도, 그냥 정부안대로 처리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용두사미임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셈이다.
▣ 대한민국의 입법 주도권은 국회에 있을까?
대한민국의 입법권은 국회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모성보호 3법의 처리과정을 보면 과연 입법 주도권이 실질적으로 국회에 있는 것인지, 정부에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정부의 저출생 종합대책 발표 후 법안 발의 현황
정부(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저출생 종합대책을 발표한 날이 2024년 6월 19일이다. 정부의 발표 이후 19명의 국회의원이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안을 대신 발의한 김정재 의원의 법안을 빼면, 나머지 18명의 의원은 정부안과 입장이 달라 본인의 법안을 제안한 것인데, 결국 처리는 정부안 그대로 통과되었다. 이래서야 과연 국회가, 국회의원이 입법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6.19일 정부 종합대책 발표 이전 발의 의원 | 6.19일 정부 종합대책 발표 이후 발의 의원 |
김희정, 박성훈, 박해철, 소병훈, 송언석, 이수진, 임이자, 정성호, 조정훈, 조지연, 진성준, 한병도, 한정애 | 강훈식, 김미애, 김선교, 김위상, 김장겸, 김정재, 모경종, 박용갑, 박정, 박지혜, 박홍배, 서범수, 송옥주, 이종배, 조인철, 한민수, 한정애, 홍기원, 황정아 |
▶법안 건수 평가 중심 관행의 함정
수십개의 법안이 발의되지만 현실적으로는 정부안대로 결론이 나는 현상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많은 의원이 발의하는 법안의 목적이 발의에 있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법안 발의 건수와 처리 건수로 평가하는 잘못된 문화와 관행때문이다. 국회가 입법 주도권을 되찾아 오기 위해서는 의원들이 발의하는 법안에 대해 책임성을 높여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어떤 법안을 발의하고, 그 법안의 처리를 위해 과연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시민들이 감시하고 평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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