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발의와 공동발의는 '하늘과 땅' 차이
일반 시민들은 잘 모르기도 하고 별 관심도 없는 문제이기는 하나,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는 형식에는 대표발의와 공동발의가 있다. 둘 다 국회에 법안을 내는 방법인데, 둘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회의원의 법안 발의 및 처리 실적으로 집계되는 것은 '대표발의' 뿐이다. 공동발의는 수십건, 수백건을 해도 실적으로 잡히지 않는다. 문제는 이로 인해 소위 '표절법안'이 남발되고, 국회에 유사한 법안이 산더미처럼 쌓여간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서영교 의원이 대표발의한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의 사례로 분석해 보겠는데, 우선 국회에서 사용하는 용어 몇 가지를 간단히 살펴보자.
▶국회 법안 관련 용어
국회에서 심의되고 처리되는 안건을 '의안'이라고 한다. 의안의 종류에는 법률안, 결의안, 건의안 등이 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하는 예산안, 결산, 조약비준 동의안 등도 모두 의안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러한 의안을 국회에 내는 것을 발의, 제출, 제안, 제의 등으로 부르는데 큰 의미는 없지만 구별해서 사용한다. 보통 ①의원이 의안을 낼 때는 ‘발의’, ②정부가 의안을 낼 때는 ‘제출’, ③위원회가 의안을 낼 때는 ‘제안’, ④의장이 의안을 낼 때는 ‘제의’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발의와 제출을 포함해서 제안이라고도 한다.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하에서는 여러 의안 중 가장 대표적인 법률안(법안)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국회의원 법안 발의 요건
국회법 제79조(의안의 발의 또는 제출)는 국회의원이 의안을 발의하는 요건과 형식을 정하고 있는데 핵심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① 10명 이상의 찬성으로 발의
② 발의의원과 찬성의원을 구분
③ 발의의원이 2명 이상인 경우 대표발의 의원 1명을 명시(서로 다른 교섭단체에 속하는 의원이 공동으로 발의하는 경우 3명까지 가능) 이렇게 조건을 갖춘 뒤 아래와 같은 양식으로 국회 의안과에 접수한다.
▶국회의원 발의 법안의 종류
국회의원이 발의하는 법안의 종류에는 1인발의 법안, 대표발의 법안, 공동대표발의 법안이 있다.
구분 | 대표발의 의원 | 공동발의 의원 | 찬성 의원 | 사례 |
1인발의 법안 | 1명 | 없음 | 9명 이상 | 2024년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이재명의원 외 170인) |
대표발의 법안 | 1명 | 대표발의+공동발의(필수)+찬성(선택) 합 10명 이상 |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이재명의원 등 12인) | |
공동대표발의 법안 | 2명~3명 | 대표발의+공동발의 or 찬성 합 10명 이상 | 은퇴자마을 조성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맹성규의원ㆍ이양수의원 등 10인) |
국회법에 따라 법안의 발의를 위해서는 10명 이상의 의원이 공동발의 또는 찬성의 형식으로 참여해야 한다. 일정 수 이상의 공동발의(찬성)을 요구하는 것은 그냥 의사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것으로 보면 된다. 여기에서 '공동발의 의원'이란? 법안의 발의에 발의자로 참여한 의원 중 대표발의 의원을 뺀 나머지 의원이 공동발의 의원이다.
▣ '대표발의'와 '공동발의' 사례 비교
사례를 통해 대표발의와 공동발의를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쉽다.
▶위법건축물 양성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안 사례
22대 국회에서 일명 '위법건축물 양성화 법안'이라 불리는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하, 특별조치법안)이 6건 발의되었는데, 이 중 3건의 대표발의 의원과 공동발의 의원은 아래와 같다.
법안 | 특별조치법안(7.17일 발의) | 특별조치법안(7.23일 발의) | 특별조치법안(9.24일 발의) |
대표발의 | 이정헌 | 남인순 | 서영교 |
공동발의 | 강유정, 김기표, 김문수, 김영환, 김현, 문금주, 박민규, 박범계, 박용갑, 박희승, 서영교, 안태준, 오세희, 이광희, 이성윤, 이훈기, 전현희, 정동영, 채현일, 최민희, 황정아(이상 21명) | 김영배, 부승찬,서미화, 서영교, 윤종군, 이기헌, 이수진, 이용선, 이해식, 진성준, 황운하(이상 11명) | 김동아, 김준형, 남인순, 박홍근, 박홍배, 송옥주, 오세희, 이용우, 이춘석(이상 9명) |
▶서영교 의원의 경우
서영교 의원은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안 2건을 이미 공동발의 한 상태에서 9.24일 본인의 대표발의로 다시 특별조치법안을 발의했다. 서영교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이 앞서 발의된 법안과 특별한 차이가 있을까? 이 법안의 구조상 특별히 다를게 없다. 법안마다 위법건축물 양성화 적용범위가 조금씩 다를 뿐이다. 경미한 차이다.
발의 의원 | 발의 일자 | 위법건축물 양성화 적용범위 |
이정헌 | 7월 17일 | 이 법은 이 법 공포일 당시 사실상 완공된 주거용 특정건축물(2014년 종전 법에 따라 사용승인을 받고 다시 위법건축물이 된 경우는 제외함)로서 세대당 전용면적 85제곱미터 이하인 다세대주택, 연면적 330제곱미터 이하인 단독주택(다가구주택 제외), 연면적 660제곱미터 이하인 다가구주택,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를 받고 주택으로 전용한 주거시설에 적용함 |
남인순 | 7월 23일 | 이 법은 2019년 12월 31일 당시 사실상 완공된 주거용 특정건축물로서 세대당 전용면적 85제곱미터 이하인 다세대주택, 연면적 165제곱미터 이하인 단독주택(다가구주택 제외), 연면적 330제곱미터 이하인 다가구주택에, 근린생활시설로 허가를 받고 주택으로 전용한 주거시설에 적용함 |
서영교 | 9월 24일 | 이 법은 2019년 12월 31일 당시 사실상 완공된 주거용 특정건축물로서 세대당 전용면적 85제곱미터 이하인 다세대주택, 연면적 165제곱미터 이하 단독주택(다가구주택 제외), 연면적 330제곱미터 이하 다가구주택에 적용함 |
그런데, 왜 별 차이도 없는 법안을 서영교 의원은 다시 발의했을까? 입법실적을 쌓기 위해서다. 만약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공동발의한 법안은 본인의 법안처리 실적으로 집계되지 않는다. 발의 및 처리실적으로 집계되는 법안은 '대표발의' 법안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서영교 의원이 유사한 내용의 법안에 공동발의 했어도, 이를 자신의 실적으로 쌓으려면 대표발의를 해야한다.
▶남인순 의원의 경우
남인순 의원은 7.23일 본인이 대표발의자로 특별조치법안을 발의했음에도 불구하고 9.24일 서영교 의원이 대표발의한 특정건축물 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의 공동발의에 참여했다. 이건 또 왜일까? 이건 그냥 법안 발의 '품앗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서영교 의원이 자신의 법안 발의에 공동발의로 참여해 주었으니, 거꾸로 서영교 의원의 법안에 남인순 의원도 공동발의자로 서명해 준 것 뿐이다. 법안 발의에 있어 품앗이 문화도 이제 좀 정리될 필요가 있는 나쁜 관행 중 하나다.
▣ '법안 실명제'를 도입한 이유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할 때, 법안의 제목과 부제를 기재하도록 되어있다. 아래 법안에서 (서영교의원 대표발의)부분이 부제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게 원래 그랬던 것은 아니다. 15대 국회 국회법 개정(2000.2.16)을 통해 이렇게 하도록 한 것인데, 말하자면 '법안 실명제'다. 실명제의 취지가 대부분 그러하듯 법안에 대해서도 국회의원의 책임성을 높이자는 취지였다. 좋은 법안에 대해서는 발의 의원을 칭찬하고, 나쁜 법안에 대해서는 발의한 의원이 그 책임을 지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법안실명제의 도입 취지가 왜곡되어 지금은 국회의원의 입법 건수를 카운팅하는 수단 정도로 변질되어 사용되고 있다. 22대국회에서는 대표발의 의원을 명시하게 한 법안 실명제 본래의 취지가 재정립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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