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기물 관리법」,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김태선)
'새옷 소각폐기 금지 3법'이 발의되었다. 패션기업들이 태그도 떼지 않은 새옷, 재고의류를 소각해서 폐기하는 행위는 제법 오래 전부터 논란이 되었다. 소위 브랜드 관리 차원에서 차라리 태워버리는게 이득이라는 이유 때문인데, 과연 얼마나 많은 새옷이 그냥 태워서 버려질까? 놀랍게도 모른다. 알 방법이 없다. 알 수도 없으니 무슨 대책을 세우기도 어렵다. 패션기업들이 새옷을 은밀하게 태워버리는 현장을 추적한 기사 하나를 소개한다.
그날 ‘007 작전’ 속에 새 옷들이 소각됐다[쓰레기 오비추어리③]
▶새옷을 태워버리는 이유
패션기업들이 재고의류를 소각해서 폐기하는 이유는 브랜드 관리, 세금 혜택, 관리비 절약 때문이다. 우선 '싸구려 옷'이 아니라는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희소성'이 필요하다. 재고를 저가에 세일판매하거나 기부하면 브랜드 평판 유지가 어렵다. 또한 재고의류를 소각하고 회계 상 손실로 처리하면 세금을 절감할 수 있다. 더구나 재고를 창고에 보관하며 관리하는 비용 또는 다른 방법으로 재활용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차라리 태워 버리는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새옷을 태워버려도 '되는' 이유
'태워버리는 이유'와 '태워버려도 되는 이유'는 맥락이 조금 다르다. 어마어마한 양의 새옷을 태워서 폐기하는 행위에 대해 윤리적인 문제와는 별도로 어떤 법적 제약이 있을 것 같지만, 그런게 없다. 왜일까? 우선, 새옷은 (소각)폐기하면 안된다는 '법'이 없다. 당연히 입지도 않은 옷을 대량 폐기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다. 최소한 새옷은 재활용 하도록 권고하는 '법'도 없다. 심지어 새옷을 도대체 얼마나 태워서 버리는지 신고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그냥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태워버려도 상관 없는 것이다.
▣ 재고의류는 폐기물 분류체계 상 어디에 들어갈까?
현행 「폐기물 관리법」은 폐기물을 여러 종류로 분류하여 각각의 처리 기준과 방법을 정하고 있다. 재고의류를 폐기한다면 어디에 해당되고 어떤 기준에 따라 처리해야 할까? 먼저 폐기물의 분류체계를 간단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위 <그림>처럼 폐기물은 생활 폐기물과 사업장 폐기물로 구분된다. 사업장 폐기물의 기준은 1일 평균 300kg 이상이다. '사업장 비배출·배출 시설계'라는 말이 좀 생소한데, 우선 배출시설계는 말그대로 사업장의 폐기물 배출시설에 따라 폐기되는 것을 말한다. 하수·폐수 처리시설, 분뇨 처리시설 등이라고 보면 된다. 배출시설을 거치지 않은 나머지 사업장 일반폐기물은 '비 배출시설계'로 분류되어 '생활계 폐기물' 기준에 따라 처리된다. 결론적으로 패션기업에서 재고의류를 폐기한다면 사업장 비 배출시설계 폐기물로 분류되어 생활계 폐기물 처리 기준이 적용된다.
▶재고의류는 어떻게 태워버리나?
사업장 폐기물이 발생하면 사업자는 폐기물 종류를 분류해서 지자체에 신고하도록 되어있다. 그렇게 해서 분류코드와 배출량이 한국환경공단에 기록된다. 섬유·의류 관련 폐기물 코드는 폐의류, 폐합성수지류, 폐합성섬유, 그 밖의 폐섬유 등이 있다. 재고의류는 당연히 별도의 코드를 부여해서 관리하지 않는다. 가장 유사한 것이 '폐의류'일 수 있지만, 재고의류를 폐의류로 처리할 경우 재고 폐기량이 노출될 수 있다. 따라서 폐합성수지류 등에 분류하여 쥐도새도 모르게 새옷을 태워버린다.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도대체 얼마나 태워 버릴까?
이건 정확히 알 수 없다. 기업 내에서도 아마 극소수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엔 아무도 모른다. 물론 정부도 모른다. 다만, 추정할 뿐이다. 추정하는 방법은 세 가지 인데, 첫째는 패션 업계의 평균적인 의류 생산 및 판매율이고, 둘째는 한국환경공단이 관리하는 사업장의 섬유·의류 폐기물 배출량이며, 마지막으로 국가통계포털 시스템에서 제공하는 폐기물 발생량 통계다.
① 브랜드 의류 생산 및 판매율
작년 7월에 국회에서 '순환경제사회 전환을 위한 패션재고 폐기 금지방안 토론회'가 있었는데, 이 토론회 자료집에 따르면 브랜드 의류 업체의 경우 최종 판매되지 않은 재고의류는 5%~15%로 추정한다. 대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은 이 재고의류를 폐기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하니, 이를 통해 대략 태워버리는 새옷의 양을 짐작해볼 수 있다.
② 71개 패션기업 섬유의류 폐기물 배출량
또 하나는, 경향신문에서 보도한 내용이다. 김태선 의원실에서 한국환경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71개 패션의류 상장기업이 최근 5년 동안 배출한 폐의류, 폐합성섬유, 폐합성수지류, 그 밖의 폐섬유는 총 214만 2,057톤이다. 의류 관련 한 해 42만 톤 이상 배출된다는 것이다.
③ 국가통계포털 폐기물 발생현황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는 전국의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을 제공하고 있는데 현재 2022년 폐기물 현황까지 공개하고 있다. 아래 표는 2020년~2022년의 섬유·의류 관련 폐기물 발생량이다.
구분 | 2020년 | 2021년 | 2022년 | |
생활 폐기물 | 폐섬유류 (혼합배출) |
370,641톤 | 396,048톤 | 368,397톤 |
폐의류 (분리배출) |
82,422톤 | 118,386톤 | 106,653톤 | |
사업장 폐기물 (비배출시설계) |
폐합성수지류 (혼합배출) |
190,611톤 | 139,937톤 | 121,261톤 |
폐섬유류 (혼합배출) |
5,126톤 | 22,980톤 | 12,470톤 | |
폐합성수지류 (성상별배출) |
1,355,032톤 | 1,631,552톤 | 1,943,013톤 | |
폐섬유류_폐의류 (성상별배출) |
3,628톤 | 2,095톤 | 1,897톤 | |
폐섬유류_기타 (성상별배출) |
30,739톤 | 42,129톤 | 42,678톤 |
언론에서 보통 1년에 50만톤 이상의 의류가 폐기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 50만톤은 혼합 및 분리배출되는 생활폐기물 중 섬유·의류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에 사업장에서 배출된 섬유·의류 관련 폐기물이 200만톤을 넘는데, 여기에 새옷이 얼마나 섞여 버려지고 있을까? 앞서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모른다.
▣ 자원순환, 재활용 촉진 '법률'은 왜 있나?
생산·유통·소비 전 과정에서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 폐기물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고, 재활용을 촉진하여 '순환경제 사회'를 만들어 가기위해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과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그리고 「폐기물 관리법」이 있다. 이 법률의 제목과 목적만 보면 새옷을 태워서 폐기하는 행위는 최상위의 제재를 받아 마땅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새옷을 태워버리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는 1)실제로 재고의류를 누가 얼마나 태워버리는지 현황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폐기물 관리법) 2)의류의 생산·유통·소비·처분 등 전 과정에서 사업자에게 순환이용에 대한 책임을 다하도록 해야한다.(순환경제사회 촉진법) 3)재고의류에 대한 재사용 또는 재활용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재활용 촉진법) 그러나 현재 3개의 법률에서는 재고의류 소각 폐기에 대해 금지나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김태선 의원, 새옷 소각폐기 금지 3법
김태선 의원이 발의한 3개의 법률 개정안은 위와 같은 법적 사각지대를 보완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즉, 새옷 폐기 현황파악, 폐기 금지에 대한 포괄적 책무, 의류에 대한 재활용 의무 부과다.
① 새옷을 누가 얼마나 태우는지 신고하라
「폐기물 관리법」 개정안은 “사업장 재고폐기물”을 "판매되지 아니하거나 판매를 포기하여 폐기로 결정된 제품"이라고 규정하고 이의 종류와 발생량 등을 신고하게 하는 내용이다.
현행 폐기물 관리법 | 김태선 개정안 |
제17조(사업장폐기물배출자의 의무 등) ②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사업장폐기물배출자는 사업장폐기물의 종류와 발생량 등을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특별자치시장, 특별자치도지사, 시장ㆍ군수ㆍ구청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 제17조(사업장폐기물배출자의 의무 등) ②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사업장폐기물배출자는 사업장폐기물 및 사업장 재고폐기물의 종류와 발생량 등을 환경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특별자치시장, 특별자치도지사, 시장ㆍ군수ㆍ구청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
만약 이렇게 된다면, 패션기업들이 재고의류 소각 폐기량을 감추기 위해 다른 플라스틱류 폐기물에 섞어서 태워버리는 관행을 막을 수 있다. 새옷 폐기를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현황파악이니 만큼 김태선 의원이 발의한 3법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② 패션 사업자는 순환이용 촉진 책무를 준수하라
「순환경제사회 전환 촉진법」에서는 순환경제(버려지는 자원의 순환망을 구축하여 제품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친환경 경제)를 위해 기본원칙과, 사업자의 책무 및 순환경제 촉진을 위한 준수사항 등을 정하고 있다.
법률 조항 | 주요내용(요약) |
기본원칙(제3조) | ⊙ 자원의 낭비를 최대한 억제할 것 ⊙ 폐기물의 발생을 최소화 하고 발생된 폐기물은 최대한 순환이용할 것 ⊙ 최대한 재사용하되, 처분할 경우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할 것 |
사업자의 책무(제6조) | ⊙ 생산 · 수입 사업자는 제품이 폐기물로 되는 것을 최대한 줄일 것 ⊙ 유통 사업자는 유통 포장재 폐기물을 최소화 할 것 ⊙ 사업자는 발생된 폐기물을 스스로 순환이용하거나 종류·용도별로 분리 배출할 것 ⊙ 사업자는 폐기물 발생 억제 기술개발에 노력하고, 국가 및 지자체의 시책에 협력할 것 |
제품의 순환이용 촉진(제17조) |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의 준수) ⊙ 제품의 순환원료 또는 친환경 소재·공법 사용에 관한 사항 ⊙ 내구성 및 수리의 용이성에 관한 사항 ⊙ 생산·유통·소비·처분 등 전 과정에서 순환이용 가능성 및 탄소배출 영향에 관한 사항 |
이에 대해 김태선 의원의 개정안은 제6조(사업자의 책무)에 "재고품의 순환이용 촉진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하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재고품의 소각 등 폐기를 할 수 있다."는 조문을 신설한 것이다. 또한 제7조(제품의 순환이용 촉진)를 준수해야 할 사업자에 '의류' 사업자를 명시하였다. 이렇게 되면 패션기업들이 새옷을 마음대로 소각·폐기하고 싶어도 이 법률이 걸림돌이 된다.
③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대상에 의류를 포함하라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는 생산자가 판매한 제품 폐기물에 대해 일정량의 재활용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다. 종전의 생산자들은 그냥 팔면 끝이었는데, 이 제도에 따라 사용 후 발생되는 제품 폐기물의 회수 및 재활용까지 생산자의 책임으로 범위를 확대 하는 것이다. EPR 제도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한국 순환자원 유통 지원센터 홈페이지 참고.
EPR은 세계적으로 확대 추세에 있는 제도인데, 유럽연합(EU)은 의류산업에도 EPR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EPR 적용대상은 포장재와 제품으로 나뉘는데 이 중 제품은 전지류, 타이어, 윤활유, 형광등, 양식용 부자(浮子), 전자제품이다. 김태선 의원의 재활용촉진법 개정안은 여기에 의류를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다만, EPR 제도는 정상적으로 폐기된 제품의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것이므로 패션기업의 새옷 폐기를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수단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환경부가 2년 전부터 관련 용역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우선 EPR 제도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밝힐 때가 됐다.
▣ 새옷 소각 금지법, 통과될 수 있을까?
상당한 저항이 예상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과도한 규제라며 반발할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산업진흥을 핑계로 머뭇거릴 수 있다. 그러나 새옷을 태워버리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옳지 않다. 법적인 규제와 제재가 당연히 필요해 보인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회적 공감대다. 광범위하게 공감대가 확산되면 국회의원은 대체로 여기에 따라간다. 또 하나는 국회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견제다. 김태선 의원의 법안이 언제 상임위(환노위)에 상정되는지, 환노위원 중 누가 어떤 이유로 이 법안의 통과에 대해 찬성하는지 또는 반대하는지 살펴야 한다. 발의 의원의 처리노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 노력들이 없으면 한 걸음도 못나간다. 국회에 쳐박혀 잠자고 있는 법안이 '태워지는 새옷'처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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