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야 총선공약_경로당 점심식사 지원
어르신들 중에 경로당에서 점심식사 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아무래도 혼자 식사하는 것 보다는 여럿이 함께 하는게 좋아서일 것이다. 그런데 경로당에서 매일 점심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일주일에 3일 정도만 식사를 할 수 있는데, 이게 경로당 운영예산 때문이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들어 '어르신 공약'을 제시했다. 경로당에서 일주일 내내 점심을 드실 수 있도록 예산을 팍팍 지원하겠다는 공약이다.
▶경로당 지원 예산은 얼마나 될까?
2024년 경로당 양곡구입비 및 냉난방비 국고보조 예산은 800억원 수준이다. 냉·난방비 및 양곡구입비는 탄력적으로 통합사용이 가능하나, 자체적으로 보조금을 절감한 경우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그 절감액은 국고에 반납해야 한다.
▣ 경로당 점심제공 공약을 이행했다?
지난 12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인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를 두고 주5일 경로당 점심제공 정책의 기반이 조성됐다고 자평하고 있다. 어떤 내용일까? 시끄러웠던 선거 공약과 달리 개정 법률의 내용은 굉장히 단순하다.
현행 노인복지법 | 개정 노인복지법 |
제37조의2(경로당에 대한 양곡구입비 등의 보조) 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경로당에 대하여 예산의 범위에서 양곡(「양곡관리법」에 따른 정부관리양곡을 포함한다)구입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할 수 있다. |
제37조의2(경로당에 대한 양곡구입비 등의 보조) 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경로당에 대하여 예산의 범위에서 양곡(「양곡관리법」에 따른 정부관리양곡을 포함한다) 및 부식 구입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할 수 있다. |
②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의 범위에서 경로당의 냉난방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할 수 있다. | ②(현행과 같음) |
개정 법률은 현행 노인복지법 제37조의2(경로당에 대한 양곡구입비 등의 보조)에서 "양곡 구입비"를 "양곡 및 부식구입비"로 바꾼 것이다. '부식'이라는 두 글자를 추가한 것. 이게 전부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지금까지는 국가보조금으로 경로당에서 쌀만 사먹었는데, 2026년 1월부터는 반찬도 사먹을 수 있다는 의미다. 경로당의 애로사항 하나를 풀어준 건 맞는데, 아직 "경로당 주5일 점심제공 공약 이행!"이라고 샴페인을 터뜨릴 때는 아니다. 실제 주5일 점심 제공은 2026년도 경로당 운영지원 예산을 얼마나 확보할지에 달려있다. 현재로서는 모른다.
▶노인복지법, 누가 발의했나?
노인복지법에서 '부식'이라는 두 글자를 추가하기 위해 무려 19명의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소속 16명, 국민의힘 소속 3명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경로당 점심제공 확대를 공약했는데, 공약 이행을 위한 충성도는 일단 민주당이 높아보인다. '주7일 점심'을 공약한 국민의힘보다 '주5일 점심'을 공약한 민주당 의원의 발의 건수가 월등히 높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노인복지법」 개정안 발의 일자 순으로 보면 아래와 같다.
순번 | 대표발의자 | 발의일 | 전체회의 상정일 |
1 | 민형배 | 2024. 6.10. | 2024. 7.16. |
2 | 서영석 | 2024. 6.12. | 2024. 7.16. |
3 | 김민석 | 2024. 6.12. | 2024. 7.16. |
4 | 복기왕 | 2024. 6.13. | 2024. 7.16. |
5 | 이종배 | 2024. 6.13. | 2024. 7.16. |
6 | 김남희 | 2024. 6.17. | 2024. 7.16. |
7 | 박상혁 | 2024. 6.21. | 2024. 8.20. |
8 | 주철현 | 2024. 6.26. | 2024. 8.20. |
9 | 박수영 | 2024. 6.27. | 2024. 8.20. |
10 | 유동수 | 2024. 7. 2. | 2024. 8.20. |
11 | 장종태 | 2024. 7. 3. | 2024. 8.20. |
12 | 정준호 | 2024. 7. 3. | 2024. 8.20. |
13 | 이훈기 | 2024. 7. 3. | 2024. 8.20. |
14 | 박지혜 | 2024. 7.11. | 2024. 8.20. |
15 | 정일영 | 2024. 7.16. | 2024. 8.20. |
16 | 이수진 | 2024. 7.19. | 2024. 8.20. |
17 | 한병도 | 2024. 8.19. | 2024.11.14. |
18 | 강선우 | 2024.11.14. | 소위 직접회부 |
19 | 김미애 | 2024.11.18. | 소위 직접회부 |
참고 | 2024년 11월 20일 보건복지위 법안소위에서 '노인복지법' 개정안 의결 |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관문은 상임위 법안심사 소위원회다.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심의하기 위한 소위는 2024년 8월 23일에 한번 열리고, 2024년 11월 20일 두번째 열린 소위에서 의결되었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 것은 소위의결 직전에 발의되어 소위원회로 '직접회부'된 강선우, 김미애 의원의 법안이다. 두 의원의 법안이 앞서 발의된 17건의 법안과 비교해서 뭐 특별히 다른게 있냐? 별로 없다. 이런 경우는 보통 법안 발의 및 처리 실적을 늘리기 위해 소위 의결시점에 임박하여 법안을 내는 수법인데, 일종의 '무임승차'로 보면 된다. 이게 가능한게 국회의 '대안반영폐기' 제도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제도도 아니다. 그냥 국회의 관행이다.
▣ 「노인복지법」 개정 사례로 보는 '대안반영폐기'
여기부터는 좀 재미없는 이야기인데,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처리 결과 중 한 유형인 '대안반영폐기'에 대해서다. 결론적으로 위 19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노인복지법 개정안은 모두 '대안반영폐기' 되었다. 대안반영폐기란 국회의원의 발의 법안 내용 중 일부 또는 전부를 위원회(대안)에 반영하고, 각 국회의원의 법안은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고 폐기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국회에서는 '반영' 쪽에 좀 더 비중을 두어 '대안반영폐기'는 통과 법안으로 간주한다. 위 19명의 국회의원들이 제각각 "내가 발의한 경로당 점심제공 노인복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주장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그런 주장을 하기 위해 유사한 법안을 이렇게나 많이 발의하는 것이다.
▶대안에 반영 '안된' 대안반영폐기
19명 의원의 법안이 대안반영폐기로 분류된 이유는 모든 의원의 법안에 '부식 구입비 지원'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일영 의원의 법안은 사정이 좀 다르다.
[정일영 의원 발의 노인복지법 개정안]
제37조의2(경로당에 대한 양곡구입비 등의 보조)
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경로당에 대하여 예산의 범위에서 다음 각 호의 운영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조할 수 있다.
1. 양곡(「양곡관리법」에 따른 정부관리양곡을 포함한다)구입비
2. 냉난방 비용
② 삭제
③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제31조제2항에도 불구하고 제1항에 따라 지급된 운영비를 자체 노력으로 절감한 경우에는 해당 비용을 반환하지 아니하고 경로당의 다른 운영비로 사용할 수 있다. 이 경우 다른 운영비를 사용한 날부터 15일 이내에 사용명세서를 보건복지부장관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위 정일영 의원의 법안에는 아무리 봐도 '부식비 지원'에 대한 내용이 없다. 당연히 위원회(대안)에 반영된 내용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반영폐기'로 분류되어 입법실적으로 처리되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해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대안에 '반영'되지 않고 '폐기'된 내용
19명 의원의 법안에는 '부식비 지원'만 들어있는게 아니다. 취사용 연료비, 인건비 지원 등 다른 지원내용도 법안에 담아 발의했다. 부식비 지원 외에 주요 내용은 아래 <표>와 같다.
대표발의 | '부식비 지원' 외 주요 내용 |
서영석 | “보조할 수 있다” → “보조하여야 한다”로 변경 |
김민석 | 주5일 이상 점심식사 제공에 필요한 비용 지원 |
복기왕 | 취사용 연료비 지원 |
이종배 | 취사용 연료비 지원 초과 지원금은 반환하지 않고 다른 비용에 사용 |
김남희 | 양곡구입비 등의 보조를 노인여가복지시설까지 확대 취사용 연료비 지원 |
박상혁 | 취사용 연료비 지원 |
주철현 | “보조할 수 있다” → “보조하여야 한다”로 변경 취사용 연료비, 인건비 지원 |
박수영 | 경로당 운영비로 통합하여 지원 |
유동수 | 취사용 연료비 지원 |
장종태 | 인건비 지원 초과 지원금은 반환하지 않고 부식 구입비에 사용 |
정준호 | 취사용 연료비, 인건비 지원 |
이훈기 | 급식 제공에 필요한 비용 지원 |
박지혜 | 취사용 연료비, 인건비 지원 초과 지원금은 반환하지 않고 다른 비용에 사용 |
정일영 | 자체 노력으로 절감한 운영비는 다른 운영비로 사용 |
이수진 | 취사용 연료비, 인건비 지원 |
한병도 | 취사용 연료비, 인건비 지원 체육ㆍ문화 활동 등 여가활동 비용 지원 |
강선우 | 취사용 연료비, 인건비 지원 |
김미애 | 인건비 지원 초과 지원금은 반환하지 않고 부식 구입비에 사용 |
연료비, 인건비 지원이 가장 많고 "보조할 수 있다"를 "보조하여야 한다"로 바꿔 경로당 운영비 지원을 의무화 하는 법안도 있다. 운영비를 자체 절감하여 남은 예산은 부식 구입비 등 다른 운영비로 사용하게 하는 법안도 있다.(이것은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거하여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내용들은 모두 폐기되었고, 유일하게 '부식비 지원'만 살아남은 것이다.
▶대안반영폐기를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좀 헷갈리는 부분인데, 최대한 쉽게 설명해보겠다. '대안반영폐기'를 수용하여 그냥 법안처리 실적 1건을 늘린 것으로 만족하고 털고 가느냐, 아니면 '부식비 지원' 외 내 법안의 다른 내용도 관철시키기 위해 '계류법안'으로 남기느냐는 의원이 선택하는 문제다. 예를 들어 취사용 연료비와 인건비를 반드시 지원하도록 관철시키겠다고 하면, 그냥 계류법안으로 남겨서 자신의 법안이 처리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안반영폐기를 수용했다는 것은 '부식비 지원' 외 다른 내용은 그냥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의원들의 관심이 '경로당 지원'보다는 '경로당 지원 법안 처리실적'에 있음을 의심케 하는 지점이다.
▶대안반영폐기가 유사법안 '남발'을 부추긴다
19명 의원의 노인복지법 개정안 내용을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대동소이, 오십보백보다. 소위 의결 전 막판에 발의한 강선우(안)은 조문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정준호(안)과 동일하다. 정준호(안)도 앞서 발의된 법안에 다 들어있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발의해서 대안반영폐기 처리된 김미애(안)은 앞서 발의한 장종태(안)과 동일한 내용이다. 별 차이도 없는 법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발의된다. 왜 이런 짓들을 하는 것일까? 법안 발의 및 처리실적을 늘리려는 것이고, 대안반영폐기라는 국회의 관행이 그 배후에 있는 것이다.
▣ 대안반영폐기 제도의 '대수술'이 필요하다
▶민형배 의원은 억울하다?
이런 경우가 잘 없는데, 이번 노인복지법 개정안을 보면 이 법안을 처음 발의한 민형배(안)과 위원회 대안이 동일하다. 민형배(안)이 사실상 '원안가결' 된 것이다. 그렇다면 민형배(안) 외의 나머지 개정안은 '대안반영폐기'가 아니라 그냥 '폐기'로 처리하는게 맞을 수 있다. 덩달아 대안반영폐기로 묶인 민형배 의원은 좀 억울하게 되었다.
▶대안반영폐기 악용 문화를 바로잡는 길
대안반영폐기 제도의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를 입법실적 늘리기용으로 악용하는 의원들이다. 2024년 12월 3일 현재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 중 541건이 본회의에서 처리되었는데, 그 중 대안반영폐기 유형으로 처리된 법안이 384건이다. 무려 71%가 대안반영폐기다. 이 384건에는 위 19건의 노인복지법 개정안도 포함되어 있다. 일일이 다 뜯어보지 않았지만 대안반영폐기를 악용해 얼마나 많은 카피법안들이 '처리실적'으로 둔갑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만약 '대안반영폐기'를 '반영'이 아닌 '폐기'로 간주한다면, 국회의 유사법안 남발 행태는 확실하게 줄어들 것이다. 최소한 대안반영폐기로 인정하는 조건을 지금보다는 훨씬 더 까다롭게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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