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로교통법」 개정안_숟가락을 얹다(신정훈, 곽규택)
'숟가락을 얹다'는 말은 남들이 차려논 밥상에 자신의 숟가락만 살짝 올려 함께 밥을 먹으려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보통 얌체같은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정당한 노력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에 끼어들어 손쉽게 이득을 얻으려고 하는 경우에 사용한다.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에도 '숟가락 얹기' 식의 비양심적 행위들이 종종 있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법안 발의에서 최종 통과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사안마다 다 다르다. 긴급을 요하는 법안이나 정당에서 전략적으로 신속 처리를 추진하는 법안은 불과 몇 일 만에 상임위원회에서 의결되고, 본회의 처리까지도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물론 이런 경우는 예외적이다. 예를 들면, 한준호 의원이 대표발의한 '방통위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6월 13일에 발의했고, 5일 후인 18일에 과방위에서 의결되었다. 일주일 뒤 6.25일에 법사위에서 의결되었고, 7월 26일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이런 특별한 경우를 빼면 법안 발의부터 최종 본회의 통과까지 최소 몇달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게 보통이다. 시급성, 중요성에서 밀리면 1년을 넘길 수도 있고, 국회의원 임기 4년 내에 처리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법안 신속처리를 위한 지름길이 있다
이해가 쉽도록 사례로 설명하는게 좋겠다. 소위 김호중법으로 불리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데 신정훈 의원과 곽규택 의원의 법안이다. 신정훈 의원의 법안은 9월 23일 발의된 후 하루만인 9월 24일에 행안위 법안소위에서 의결되었고, 다음날인 25일에 행안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곽규택 의원의 법안도 비슷한데 9월 20일 발의 후 상임위 의결까지 고작 5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법안이 처리되는데 가장 큰 난관은 법안소위에 회부되어 의결되는 과정인데 이게 하루만에 끝났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초스피드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자세히 보면 두 법안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소위원회 직접회부'다.
▶법안 신속처리 지름길: 소위원회 직접회부
'소위원회 직접 회부'가 무엇일까? 국회에서는 의원이 법안을 제출하면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 및 상정이 된다. 상임위는 전체회의에서 법안의 취지 설명을 듣고, 전문위원 검토보고를 받은 후에 대체토론(안건 전체에 대한 문제점과 당부 등 일반적 토론)을 거친 후 법안 소위원회에 보내 이를 심사·보고하도록 되어있다. 이게 일반적인 순서다. 그런데 국회법 제58조제4항에서는 이 절차와 관련된 예외규정을 두고 있다. 바로 소위원회 직접회부다.
「국회법」 제58조제4항
소위원회에 회부되어 심사 중인 안건과 직접 관련된 안건이 위원회에 새로 회부된 경우 위원장이 간사와 협의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그 안건을 바로 해당 소위원회에 회부하여 함께 심사하게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이미 소위에서 논의 중인 안건과 유사한 안건이 추가로 접수되면 앞의 절차를 생략하고 그냥 소위로 보내서 같이 심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소위 직접회부 법안을 일반화 해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숟가락 얹기' 유형의 법안이 많은 편이다. 이미 발의된 법안 중 곧 처리될 것으로 보이는 법안을 약간 수정 또는 보완하여 새로이 발의하는 행태다. 신정훈, 곽규택 의원의 법안이 이 사례에 해당된다.
▶소위 의결 직전 발의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9.25일 행안위에서 의결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소위 '술타기' 금지법이다. 술타기란 음주운전 사고 후 고의로 추가로 술을 마셔서 운전 당시의 혈중알코올 농도 측정에 혼선을 주는 행위다. 술타기를 금지하는 법안은 이미 민형배(2024.6.10), 신영대(6.18), 이해식(7.2), 박성훈(7.24), 서영교(8.6), 이종배(8.13), 김승수(8.19) 의원이 발의했다. 내용은 모두 대동소이하다. 유사법안이 다수 발의된 상태여서 신정훈(9.23), 곽규택(9.20) 의원이 굳이 이 법안을 발의하지 않더라도 술타기 금지법 처리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는 상황이었다.
▶비양심적인 이유
국회법에서 소위원회 직접회부 절차룰 두고 있는 것은, 본래 법안소위에서 논의중인 안건과 관련하여 중요하고 긴급한 사항이 함께 논의될 필요가 있을 때를 대비해 마련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정훈, 곽규택 의원의 법안처럼 이미 유사한 법안이 다수 발의되어 소위 심사가 개시되는 상황에서 소위 직접회부 경로를 이용하여 자신의 법안이 함께 심사되도록 하는 것은 법안 발의 및 처리 실적을 손쉽게 늘리려는 편법으로 보여진다.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비양심적'으로 평가한다.
▣ 비양심적 법안 실적 쌓기를 방지하려면?
우선 이런 방식의 법안 발의를 지양하는 국회의원들의 양심과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나아가 소위 직접회부는 상임위원회 위원장의 권한인 바, 각 위원장들은 소위 직접회부의 요건과 기준을 좀 더 엄격하게 적용하여 직접회부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위원장이 소위 직접회부를 결정하였을 때는 그 사유를 기록에 남겨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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