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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쟁점

법안 쪼개면 무조건 이득?

by 레몬컴퍼니 2025. 1. 17.

▣ 「기후·기후변화 감시 및 예측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박해철)

"법안을 쪼갠다." 무슨 말인지 생소한 분들이 많을텐데, 주식으로 치면 '주식분할, 액면분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1만원 짜리 주식 1주를 천원 짜리 10개로 쪼개는 것처럼, 1개 법안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을 여러 법안으로 나누어 발의하는게 '법안 쪼개기'다. 액면분할은 주식거래를 활성화시키고 유동성을 좋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데, 법안을 쪼개서 발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법안 발의 '건수'를 늘리기 위해서다. 법안을 많이 발의한 의원이 열심히 일한 의원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을 노리는 행위다.

법안 쪼개면 무조건 이득이다?

▶법안 쪼개기 발의 사례

박해철 의원은 2024년 12월 24일부터 (크리스마스 공휴일 빼고)3일 동안 「기후·기후변화 감시 및 예측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3건을 하루에 한건씩 발의했다.

박해철_기후 기후변화 감시 및 예측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_발의현황_출처:잠자는국회

우선 3건의 개정안이 어떤 내용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① 2024.12.24 발의 개정안

현행 법률은 기상청장이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중앙 행정기관장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는데, 박해철(안)은 '단체 및 전문가 등'의 의견도 듣도록 하는 내용이다.

② 2024.12.26 발의 개정안

현행법 제9조(국가 기후변화 표준 시나리오의 생산 등)와 관련하여, 기상청장이 매년 표준 시나리오의 활용에 관한 실태조사를 해서 국회에 보고하라는 내용이다.

③ 2024.12.27 발의 개정안

기상청장과 해양수산부장관이 기후ㆍ기후변화 감시 및 예측 기술의 전문인력 양성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기후변화과학교육사 양성기관 및 자격 등에 대해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박해철 의원

세 건의 법안 모두 경미한 변경 내용으로 보인다.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런 경우 3건의 법안으로 나누어 낼 필요 없이 1건의 「기후·기후변화 감시 및 예측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위 내용을 모두 담아서 발의해도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굳이 3건으로 나누어 하루에 한건씩 발의했을까?

▶법안을 쪼개서 발의하는 이유

하나마나 한 말이지만, 법안 발의 건수를 늘리기 위함이다. 법안 1건을 발의할 에너지로 3건을 발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까지 설명하려면 좀 복잡하긴 한데, 위 3건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한꺼번에 심의된다. 만약 3건 모두 개정법률에 반영된다면 <위원회 대안>에 담겨 처리되는데, 그럴 경우 박해철 의원은 법안처리 실적 3건을 추가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의원들이 이렇게 '건수'에 집착하는 이유는 '건수'로 의원의 의정활동이 평가되기 때문이다.

<같은 제목 법안을 하루에 한꺼번에 여러 건 발의할 수는 없나?>
국회법상 못하게 하는 규정은 없다. 그러나 의안을 접수하는 국회 의안과에서 그러지 못하게 권고한다. 사실 그렇게 하면 쪼개기 법안이라는 것이 노골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의원도 없다. 쪼개기 발의가 부끄러운 행위라는 것을 본인들도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쪼개기 법안 감별법

같은 제목의 법안이 하루 이틀 간격을 두고 연속적으로 발의되는 경우 쪼개기 가능성이 크다. 쪼개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 위해 3~4일 간격으로 발의하는 경우도 있다.

박해철_외국인근로자 고용 법률 개정안_발의현황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서는 대표발의 의원을 포함해 10명 이상의 공동/찬성 발의자가 필요한데, 쪼개기 법안의 경우 공동발의자가 동일한 경우가 많다. 「기후·기후변화 감시 및 예측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경우도 3건 모두 공동발의 의원이 동일하다.

[공동발의 의원] 박해철, 조계원, 정태호, 서영석, 이성윤, 추미애, 한민수, 송옥주, 강선우, 복기왕 의원(이상 10명)

대체로 개정안의 내용이 경미한 변경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쪼개기 법안의 경우 대체로 법안의 내용보다는 발의 건수를 늘리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 박해철 의원 발의 법률안의 루틴

2025년 1월 17일 현재, 박해철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총 55건이다. 국회의원 입법 현황판 '잠자는 국회'(https://sleeping-assembly.org)에 따르면, 법안 발의 건수 최다 기준 300명 국회의원 중 11위다.

법안 발의 건수 최다의원 순위_출처:잠자는국회

그러나 현재까지 박해철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보면, 같은 제목의 법안이 반복적으로 발의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모두를 쪼개기 법안으로 간주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의심받을 만한 루틴이다.

박해철 의원 발의_동일제목_법안현황

쪼개기 법안 사례를 분석하는 이유는, 쪼개기 자체의 문제를 들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법안 발의 건수로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평가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우리가 법안을 많이 발의한 의원을 열심히 일하는 의원으로 평가하면, 의원들은 그저 발의 건수를 늘릴 궁리만 하게된다.

▣ 법안 쪼개봐야 득될게 없다

박해철 의원 말고도 쪼개기 법안으로 의심되는 사례는 사실 굉장히 많다. 많은 의원들이 법안을 쪼개면 무조건 이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산적인 국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쪼개봐야 득될게 없더라"거나, "습관적으로 쪼개다가는 망신당할 수도 있다"는 문화가 빨리 정착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