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탈 중립론'의 실체는 '단순 사회자'다☜
“국회의장의 중립이 국회를, 나라를 망치고 있다.” 온도 차가 있지만, 의장에 도전하는 민주당 후보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우리는 이 중 한명을 제22대 국회의장으로 맞이해야 한다. “의장은 기계적 중립이 아니라 민의를 따라야 한다.” 얼핏 들으면 참 멋있는 말인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복잡하고 어렵다. 국회의장 ‘탈 중립’ 선언,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첫째, 국회의장이 되어도 '당적'을 유지하겠다는 것인가?
불가능하다. 「국회법」 제20조의2는 의장으로 당선된 다음 날부터 당적을 가질 수 없게 하고 있다. 2002년에 개정 후 20년 넘게 적용 중이다. 이는 의장이 다수당이 아닌 국회를 대표하여 중립성을 바탕으로 국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다.
혹자는 미 하원의장의 사례를 들어 의장의 당적 이탈을 명시한 국회법 자체가 문제라고 하는데, 실제로 그렇다면 법을 개정하면 된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제20조의2’를 삭제하여 20년 전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의장의 탈중립을 주장하는 후보 중 누구라도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할 수 있다.
▶둘째, 민의에 따라 '직권상정' 할 건 하겠다는 것인가?
불가능하다. 국회법에는 ‘직권상정’이라는 말 자체가 없다. 보통 「국회법」 제85조(심사기간)을 두고 직권상정을 거론하는데, 85조는 의장의 직권상정을 열어준 조항이 아니라, 아주 엄격하게 제한한 것이다. 심사기간 지정은 ‘천재지변, 국가비상사태, 교섭단체 간 합의’의 경우에만 할 수 있다. 2012년 여야 합의로 처리한 국회 선진화법의 산물이다.
2012년 국회법은 쟁점 법안이 장기 미처리 상태로 방치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권상정 대신 몇 가지 장치를 새로 두었다. 대표적인 것이 ‘안건 신속처리제도’와 ‘본회의 직접부의 요구’다. 본회의 직접부의는 상임위가 의결한 법률안을 법사위가 이유 없이 방치할 때, 상임위가 본회의에 직접 부의를 요구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안건 신속처리제도는 본질적으로 타협이 어려운 쟁점 법안을 일정기간 경과 후 자동으로 다음 심사단계로 밀어내는 제도다. 이 두 가지 제도에서 의장은 본회의에 부의된 법안을 언제 상정할 것이냐는 아주 작은 재량권(선택권)만 가질 수 있다. 여야 합의를 유도하는 국회의장의 극히 협소한 권한인데, 이것을 두고 직권상정 운운하는 것은 무지하거나 양심이 없는 것이다.
▶셋째, 정치검찰의 국회 압수수색을 막겠다는 것인가?
불가능하다. 「형사소송법」 제123조제1항은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할 때 책임자에게 통지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국회에 영장을 집행할 때도 의장이나 사무총장에게 사전 통지를 하는 것이다. 그냥 통지다. 허가를 받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삼권분립의 원칙에 근간한 것이다.
▶넷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인가?
불가능하다. 이건 헌법을 다시 써야 할 문제다. 물론 개헌도 불사하겠다는 후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개헌은 국회의장의 중립·탈중립 문제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의 이슈다. 만약 개헌을 추진한다 해도 ‘중립성’을 잃은 의장은 개헌이라는 험난한 과정을 이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다.
▶'탈 중립' 국회의장이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다.
다수당의 ‘예스맨’이 되는 것이다. 그냥 다수당의 결정을 집행하는 사회자 역할만 하면 된다. 어떤 후보는 거꾸로 이야기하던데, 의장은 중립을 포기하는 순간 ‘단순 사회자’로 전락한다. 이건 국회의원 300명 중 누구를 시켜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국회의장은 다수당의 최다선 그룹에서 선출된다.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그렇게 하라는 규정은 없다. 그것은 국회의 전통이고 규범이고 규칙이다. 국회의 역사를 잘 알고, 온갖 시행착오를 경험한 의원이 좀 더 발전적으로 국회를 운영하라는 뜻이다. 의장은 반드시 ‘중립’해야 한다는 명시적인 규정 역시 어디에도 없다. 이는 국회에서 상식으로 존중되고 이행되어 온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장으로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국회의 신뢰회복을 위해 중립 원칙을 바탕으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국회 운영을 약속하겠습니다. 300명 전체 의원의 대표가 되라는 국민의 말씀을 명심(銘心)하겠습니다.” 이런 국회의장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과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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