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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쟁점

국회의원 입법실적 부풀리기_'주식' 한 주도 없는데 '배당'을 요구한다면?

by 레몬컴퍼니 2024. 4. 16.

회사 주식이 한 주도 없는 사람이 만약 그 회사의 배당을 요구한다면? 당연히 미친 사람으로 취급받아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국회에서는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의 법안 처리 유형 중 하나인 '대안반영폐기'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려 한다.

21대 국회 법안처리 현황: 출처_잠자는 국회

2024년 4월 16일 현재, 국회에서는 25,801건의 법안이 발의되고 그 중 9,453건이 처리되었다. 21대 국회 임기가 다 끝나가는데 처리율은 36.6%에 그치고 있다. 처리된 법안 9,453건의 처리유형을 보면 이 중 62.7%인 5,928건이 '대안반영폐기'로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대안반영폐기'라는게 과연 무엇일까?

▶「대안반영폐기」란?

대안반영폐기란 '위원회의 법률안 심사결과 그 법률안의 내용을 일부 또는 전부 반영한 위원회 대안을 제안하는 대신,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한 법률안'으로서 실질적으로는 가결 법률안과 차이가 없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A라는 법에 대하여 국회의원들이 a1, a2, a3같은 법률 개정안을 제출하면 소관 위원회는 a1, a2, a3을 함께 심의하여 A(안)이라는 위원회 대안을 만들고, a1, a2, a3 개정 법률안의 내용 일부 또는 전부가 대안 A(안)에 반영되었다고 보아 폐기하게 되는데, 이를 대안반영폐기라고 하는 것이다. A(안)은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되면 A라는 법 개정이 완성된다.

▶「대안반영폐기」와 「폐기」의 차이

문제는 a1, a2, a3의 내용이 A(안)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을 경우다. 이럴 경우 a1, a2, a3는 대안반영폐기가 아니라 그냥 '폐기'되어야 한다. 대안반영폐기와 그냥 폐기는 천지차이인데, 전자는 국회의원의 입법실적에 반영되고 후자는 법안처리 실적에서 빠진다. 그런데 대안에 반영되지 않은 a1, a2, a3 법률안들이 '대안반영폐기'로 처리되는 일이 허다하다. 마치 주식이 한 주도 없는 사람이 배당을 받아가는 것과 흡사하다. 실제로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렇다. 예를 들면, 민형배 의원은 2020년 7월 23일에 지방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의 내용은 부동산 양도소득세에 대한 소득세 납세지를 납세자 주소지가 아니라 해당 부동산 소재지로 변경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내용은 지방세법 개정안 대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반영폐기'로 처리되어 법안 처리건수 1건이 추가되었다.

 

더 재미있는 사례도 있다. 민형배 의원이 2023년 8월 9일에 발의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어린이 통학버스의 정의'에 '체험학습 등 활동을 위한 이동까지 포함'시키는 내용이다. 그런데 실제 개정된 법률은 정 반대로 '현장체험학습 등 비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교육활동을 위한 이동은 어린이 통학에서 제외'하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반영폐기로 분류되어 처리법안으로 집계되고있다.

 

민형배 의원의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류호정 의원은 2021년 6월 14일,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유기동물 증가에 대한 대책으로 '민간 동물보호소'에 대한 정의를 규정하고, 등록제를 도입하여 비용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내용은 개정 「동물보호법」에 반영되지 않았지만 역시 '대안반영폐기'로 분류되어 입법실적을 늘렸다. 아마 대안반영폐기 법안 5,928건을 전수조사 해보면 이런 사례가 무더기로 나올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국회의원의 입법활동 평가가 건수, 즉 숫자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정당에서 공천 심사를 할 때도, 시민단체가 의정활동 평가를 할 때도 발의 몇 건, 처리 몇 건 이런 식으로 다루기 때문에 국회의원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건수'에 집착하게 된다.

▶22대국회에서는 시정되어야 한다

'대안에 반영되지 않은 대안반영폐기'의 원인은 국회의원의 요구 때문일 수도 있고, 소관 위원회의 행정착오일 수도 있다. 이유가 어떻든 반드시 시정되어야 할 문제다. 또다른 문제는 '대안반영폐기'가 유사법안 중복발의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국회의원이 선행발의된 법안에 날짜, 숫자, 명칭 등을 약간만 바꾸어 법안을 다시 제출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이렇게 해서라도 '대안반영폐기'로 처리되면 본인의 입법실적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제도개선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