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5일,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3층에서 불이 붙어 외벽 창호를 타고 순식간에 위로 번졌고, 이 과정에서 외벽 창호가 녹아내리며 유리창이 깨졌다.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의 외벽 창호는 대부분 가연성 창호(PVC: 폴리염화비닐, 플라스틱)로 설치돼 있어 3층에서 발생한 화재가 급속하게 17층까지 확산된 것이다. 이 화재로 30대 남성 2명이 사망했고, 29명이 유독가스 흡입 등 중·경상을 입었다.
이렇게 베란다 외벽의 가연성 PVC 창호는 불이 붙으면 곧바로 뒤틀려서 유리창이 깨지고 화염이 위층으로 타고 올라가 화재가 크게 확산된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은 왜 이런 위험성을 알고도 고층 아파트 외벽 창호에 여전히 가연성 창호가 설치되도록 방치하고 있는가이다.
▶고층 건물 화재확산 방지를 위한 법률개정
놀라운 사실은, 이미 이런 위험성을 공감하고 관련 법률이 개정되었다는 것이다. 국회는 2020년 12월 1일, 화재확산을 최소화 하기 위하여 건축법 제52조를 개정하였고, 이 법률은 12월 22일에 공포되어 2021년 6월 23일 자로 시행되고 있다.
개정 건축법에서는 "건축물 외벽에 설치되는 창호는 방화에 지장이 없도록 인접 대지와의 이격거리를 고려하여 방화성능 등이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적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서 말하는 창호란 유리창과 창틀을 말하는 것으로, 법대로라면 유리창은 방화유리를 사용해야 하고, 창틀도 난연성 소재를 사용해야 한다. 상식적으로 가연성(PVC) 소재를 사용하면 안되는 것이다.
▶법 개정만으로는 법 집행이 안되는 이유
그런데 이 법은 아직도 정상 집행이 되지 않고 있다. 왜일까? 법률은 법률 자체만으로 집행되지 않는다. 법률에서 위임한 시행령과 시행규칙에서 세부적인 기준과 지침을 정해야만 해당 법률이 작동되는 것이다. 개정 건축법에서도 그 기준을 국토교통부에서 정하도록 했다. 그런데, 국토교통부는 법 개정 후 3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관련 시행규칙을 만들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방화 유리창에 대한 기준은 있지만, 창틀 부분의 방화성능 등에 대한 규정이 현재까지도 없다. 그러니 있으나마나 한 법률이 되고 있는 것이다.
▶외벽 창호 방화성능 기준 관련 법률과 시행규칙
「건축법」
제52조(건축물의 마감재료 등) ① ∼ ③ : (생 략)
④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용도 및 규모에 해당하는 건축물 외벽에 설치되는 창호(窓戶)는 방화에 지장이 없도록 인접 대지와의 이격거리를 고려하여 방화성능 등이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적합하여야 한다.
「건축법 시행령」
제61조(건축물의 마감재료 등) ① : (생 략)
② 법 제52조제2항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물”이란 다음 각 호의 건축물을 말한다.
1. 상업지역(근린상업지역은 제외한다)의 건축물로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
가. 제1종 근린생활시설, 제2종 근린생활시설, 문화 및 집회시설, 종교시설, 판매시설, 운동시설 및 위락시설의 용도로 쓰는 건축물로서 그 용도로 쓰는 바닥면적의 합계가 2천제곱미터 이상인 건축물
나. 공장(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화재 위험이 적은 공장은 제외한다)의 용도로 쓰는 건축물로부터 6미터 이내에 위치한 건축물
2. 의료시설, 교육연구시설, 노유자시설 및 수련시설의 용도로 쓰는 건축물
3. 3층 이상 또는 높이 9미터 이상인 건축물
4. 1층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필로티 구조로 설치하여 주차장으로 쓰는 건축물
5. 제1항제4호에 해당하는 건축물
③ 법 제52조제4항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용도 및 규모에 해당하는 건축물”이란 제2항 각 호의 건축물을 말한다.
「건축물의 피난ㆍ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
제24조(건축물의 마감재료 등) ① ∼ ⑪ : (생 략)
⑫ 법 제52조제4항에 따라 영 제61조제2항 각 호에 해당하는 건축물의 인접대지경계선에 접하는 외벽에 설치하는 창호(窓戶)와 인접대지경계선 간의 거리가 1.5미터 이내인 경우 해당 창호는 방화유리창[한국산업표준 KS F 2845(유리구획 부분의 내화 시험방법)에 규정된 방법에 따라 시험한 결과 비차열 20분 이상의 성능이 있는 것으로 한정한다]으로 설치해야 한다. 다만, 스프링클러 또는 간이 스프링클러의 헤드가 창호로부터 60센티미터 이내에 설치되어 건축물 내부가 화재로부터 방호되는 경우에는 방화유리창으로 설치하지 않을 수 있다.
국토부는 왜 창호(창틀)의 방화성능 관련 기준을 만들지 않고 있는 것일까? 공식적으로는 알 수 없다. 다만, 국토부에서는 외벽 창호 기준을 난연성 소재로 강제할 경우 건축비 상승에 따른 국민경제 부담을 우려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사람 목숨보다 건축비가 더 중요하다는 논리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일부에서는 국토부 담당 공무원과 PVC 창호 업체와의 유착관계를 의심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확인할 방법은 없다.
▶안하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고층건물의 화재는대형 인명사고를 초래할 수 있는 중대한 인재 사고다. 화재 안전 기준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엄격하게 규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고층 건물 외벽 창호(유리창, 창틀)에 난연성 소재를 사용하도록 하여 화재 발생 시 급격한 확산을 막는 대책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바로잡아야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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