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을 처리하는 방법에는 4가지 유형이 있다. 명칭과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든 발의한 의원이 법을 제정 또는 개정했다고 인정해준다. 입법실적이 된다는 말이다.
▶국회 법률안 처리 유형
☞원안가결: 발의된 법안을 수정 없이 위원회와 본회의에서 가결한 경우다.
☞수정가결: 발의 원안이 수정되어 가결된 경우다.
☞대안반영폐기: 개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내용 일부 또는 전부를 반영한 '위원회 대안'을 제안하는 대신, 개별 법안은 폐기하는 경우다. 원래 법안의 취지와 내용이 '대안'에 담겼다고 하여 형식적으로는 '폐기'지만 실질적으로는 '가결'된 법안으로 인정한다.
☞수정안반영폐기: 세입예산안 부수법률안이 본회의 자동부의되어 처리되는 경우, 수정안에 그 법률안의 내용이 일부 또는 전부 반영되어 폐기하기로 한 법률이다. 좀 어려운 개념인데 그냥 이 정도로만 이해해도 된다.
4가지 유형 중 「원안가결」과 「수정가결」을 목표로 하려면, 시간과 노력을 비교적 많이 들여야 한다. 오늘은 법안 처리 유형 중 「대안반영폐기」를 활용해, 간단하게 법안처리 건수를 늘리는 방법을 소개해 주려고 한다. 최근에 성공한 박진 의원의 사례분석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
▶한국수출입은행법 개정안 사례
2024년 2월 5일, 박진 의원은 「한국수출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내용도 아주 간단하다. 한국수출입은행의 자본금을 현행 15조원에서 50조원으로 증액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수출입은행 자본금 증액 문제는 이미 소관 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안건이었다. 21대 국회 초반인 2020년 8.25일, 정성호 의원이 「한국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수은의 법정자본금을 현행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늘리는 내용이다.
정성호 법안은 2020년 11.6일에 기재위에 상정되고, 2021년 3.17일에 기재위 경제재정 소위원회에서 논의되었다. 소위에서는 자본금 증액에 대한 근거 부족으로 계속심사(보류) 결정되었으며, 이후 기재위에 계속 계류되고 있었다. 그러나 폴란드와의 방산 수출계약 등을 위해 법정자본금 한도증액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윤영석 의원은 자본금을 15조원에서 30조원으로 증액하는 법안을 발의(2023년 7.14일)하고, 양기대 의원은 35조원 증액 법안을 발의(2023년 10.16일)했다. 그리고나서 마지막으로 박진 의원이 50조원까지 늘려 발의한 것이다.
일자 | 내용 | 자본금 증액(안) |
2020년 8.25일 | 정성호 안 발의 | 25조원 |
2021년 3.17일 | 기재위 경제재정소위 논의 | 25조원 |
2023년 7.14일 | 윤영석 안 발의 | 30조원 |
2023년 10.16일 | 양기대 안 발의 | 35조원 |
2024년 2.5일 | 박진 안 발의 | 50조원 |
2024년 2.21일 | 기재위 경제재정소위 의결 | 25조원 |
2024년 2.23일 | 기획재정위원회 의결 | 25조원 |
2024년 2.29일 | 국회 본회의 의결 | 25조원 |
한국수출입은행의 자본금을 증액하는 법안은 마침내 2024년 2.21일 기재위 경제재정소위를 통과하고, 2.23일 기획재정위원회 의결, 2.29일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최종 의결된 자본금은 25조원이다. 이에 따라 정성호, 윤영석, 양기대, 박진 의원의 개별 법안은 '대안반영폐기'되면서 각각 입법실적 1건이 추가되었다. 결과적으로 박진 의원은 발의(2.5일)부터 본회의통과(2.29일)까지 24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24일만에 처리법안 1건을 뚝딱 만들어 낸 것이다.
▶「대안반영폐기」 추진 시 유의사항
첫째, 양심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혹시라도 입법실적을 늘리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냥 무시하면 된다. 시민단체의 의원평가에서도 1건이 중요하지 무슨 내용인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아무도 안본다. 정당 내부의 의원평가도 그냥 '건수'만 본다. '원안가결'이든, '수정가결'이든, '대안반영폐기'든 다 그냥 똑같이 1건이다. 양심의 가책 그런거 신경쓰지 말고 그냥 쉬운 길로 가면 된다.
둘째, 정보가 중요하다. 대개 '대안반영폐기'로 득점할 수 있는 법안은 큰 쟁점이 없고, 소위원회에서 1~2번 정도 논의된 후 대체로 처리될 것으로 전망되는 법안이 좋다. 내용은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앞서 발의된 법안에서 숫자나 용어를 살짝 바꾸기만 해도 된다. 현재 소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안건과 관련된 법안을 발의하면, 위원회 전체회의 상정이나 대체토론도 건너뛰고 바로 소위에 '직접회부' 된다. 그러고나서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진짜로 따라할까봐 좀 걱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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