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법 개정안(21대국회 / 김영주, 홍익표, 이상헌, 조수진)
국군 정보사 소속 해외 정보요원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건이 터졌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이 사건과 관련해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을 누가, 왜 막았나"며 민주당을 공격했다. 이어 21대 국회에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4건 발의(민주당이 3건)됐는데, 정작 법안 심의 과정에서 민주당이 제동을 걸어 무산됐다고 비판했다. 참 재미있는 주장인데, 우선 "간첩법"이라는 것은 없다.
▶형법 제98조 간첩죄
한동훈 대표가 말하는 "간첩법"이란 형법, 그 중에서도 제98조(간첩)에 따른 '간첩죄'를 두고 하는 말이다.
형법 제98조(간첩)
①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 군사상의 기밀을 적국에 누설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현행 형법상 간첩죄는 “적국을 위하여” 국가기밀을 탐지‧수집(간첩)하거나 군사기밀을 누설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이 때 '적국'이란 대한민국과 전쟁(사실상 전쟁 포함)을 수행하고 있는 교전상태 또는 적대관계에 있는 외국 또는 외국인단체를 말한다.
▶간첩죄의 확대적용 필요성
그런데 냉전이 끝나고 포괄적 안보 개념이 등장하면서 ‘적국’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있다. 특히 적대관계냐 아니냐와 상관없이 국가기밀의 해외유출을 방지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현행법으로는 (적국이 아닌)외국을 위한 국가기밀 누설행위 등에 대해서 간첩죄가 아니라 「군사기밀보호법」, 「형법」상 공무상 비밀누설죄 등을 제한적으로 적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적국에서 외국으로 간첩죄의 대상을 확대하여 국가기밀 유출 등에 대한 처벌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았다.
▶21대국회 형법 제98조 간첩죄 개정안
외국을 포함하여 간첩죄 대상을 확대하고자 하는 형법 개정안은 찾아보니 4건이 발의되었다. 좀 예민한 이슈니, 개정안 전문을 수록한다.
발의일자 | 발의의원 | 개정안(전문) |
2022년 9.19일 |
김영주 (민주당) |
제98조(간첩) ①⋅② (현행과 같음) ③ 외국을 위하여 간첩한 자는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
2022년 11.29일 |
홍익표 (민주당) |
제98조(간첩) ① 외국 또는 외국인 단체를 위하여 간첩하거나 외국 또는 외국인 단체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군사상의 기밀을 외국 또는 외국인 단체에 누설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
2023년 1.26일 |
이상헌 (민주당) |
제98조(간첩) ① 적국, 외국 및 외국인 또는 외국인 단체를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 외국 및 외국인 또는 외국인 단체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 군사상의 기밀을 적국, 외국 및 외국인 또는 외국인 단체에 누설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③ 국가핵심기술, 방위산업기술 등 산업기밀을 적국, 외국 및 외국인 또는 외국인 단체에 유출한 사람도 제1항의 형과 같다. |
2023년 2.10일 |
조수진 (국민의힘) |
제98조(간첩) ① 적국, 외국 및 외국인 또는 외국인의 단체를 위하여 국가 기밀(국가안전보장을 위하여 한정된 인원만이 알 수 있도록 허용되고 다른 국가 또는 집단에 대하여 비밀로 할 사실ㆍ물건 또는 지식으로 분류된 사항을 말한다)을 탐지ㆍ수집ㆍ누설ㆍ전달ㆍ중계 행위(이하 “간첩”이라 한다)를 하거나 적국, 외국 및 외국인 또는 외국인의 단체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 군사상의 기밀(국가안전보장을 위하여 군사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법령에 따라 기밀 사항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에 한하지 아니하고, 외부에 알려지지 아니하는 것이 국가안전보장에 상당한 이익이 있는 사항을 말한다)을 적국, 외국 및 외국인 또는 외국인의 단체를 위하여 탐지ㆍ수집ㆍ보관ㆍ누설ㆍ전달ㆍ중계하는 행위를 한 자도 전항의 형과 같다. ③ 산업상의 기밀(국가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을 말한다)을 적국, 외국 및 외국인 또는 외국인의 단체에 기망ㆍ절취ㆍ협박 등 부정한 방법으로 유출한 사람은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
개정안의 내용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간첩의 대상을 외국으로 확대하고, 군사상 기밀만이 아니라 산업기밀도 간첩죄를 적용받게 하는 정도의 차이다.
▶그래서 누가 '간첩죄' 확대를 막았나?
김영주·홍익표·이상헌·조수진 발의 개정안 4건이 법사위에서 함께 심사되었다.
본격적인 논의는 2023년 3월 22일, 6월 28일, 9월 12일 세차례에 걸쳐 법사위 제1소위에서 논의되었다. 우선 당시 소위에 참석한 위원은 다음과 같다. 민주당, 국민의힘 소속 의원 모두 참석한 것으로 회의록에 기록되어 있다.
소위 일자 | 참석 위원 |
2023년 3.22일 | 권인숙, 기동민, 김남국, 박주민, 유상범, 이탄희, 장동혁, 정점식 |
2023년 6.28일 | 권칠승, 박용진, 소병철, 유상범, 이탄희, 장동혁, 정점식 |
2023년 9.12일 | 권칠승, 박용진, 박주민, 소병철, 유상범, 이탄희, 장동혁, 정점식 |
그래서 이 법안 처리를 누가 막았냐고? 한동훈 대표가 "민주당이 막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힘 의원이 처리하려고 했는데, 민주당 의원이 막았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당시 회의록을 보면 분위기가 전혀 그렇지 않다. 여야 구분없이 대다수 의원들이 이 법안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고, 결국 누가 막은 것이 아니라 합의해서 처리를 하지 않은 것이다. 회의록 전체를 보지 않아도, 이 법안들이 논의된 법사위 소위에서 소병철 위원장의 마무리 발언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6월 28일, 소병철 위원장 마무리발언]
위원님들 충분히 발언하셨고요. 사실 비교표를 보시면 아시 겠습니다마는 적국이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 하는 부분이 큰 내용이고 간첩죄의 처벌 대상은 과거에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간첩이 아닌 일종 의 산업스파이까지 처벌할 것이냐 하는 부분도 많은 논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까 정점식 위원님이 말씀하셨듯이 법원행정처 차장님이 여러 가지 구분이 필요하다는 말씀도 주셨고 그래서 오늘은 계속 논의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9월 12일, 소병철 위원장 마무리발언]
정점식 위원님 좋은 지적이 십니다. 지금 소위 말하면 산업스파이라든지 이런 경우 들은, 물론 그것도 국익에는 관련되지만 기업의 이익과 직결되는 부분도 있고 종전의 간첩죄는 국가를 위한 법으로 보호법익이 돼 있는데 이게 범위나 외연을 확장하다 보니까 모호한 부분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저 희들이 검토를 해서 심의를 계속하도록 하겠습니 다
흥미로운 것은 소병철 위원장의 마무리 발언에서 두번 다 "정점식" 위원을 언급했는데, 실제로 회의록을 보면 정점식 의원의 발언량이 상당히 많고 또 이 법안들의 문제점에 대해 전문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한동훈 대표는 그냥 정치적으로 민주당을 공격할 것이 아니라 왜 형법 제98조 간첩죄 개정안이 처리되지 못했는지 같은 당 정점식 의원에게 물어보는 것이 어떨까?
▶22대 국회 형법 제98조 간첩죄 개정안
예상된 결과지만, 22대 국회에서도 간첩죄 확대 적용을 위한 형법 개정안이 이미 여러 건 발의되었다. 21대 국회에서 누가 막았으니 그런거 따지지 말고, 22대국회에서 열심히 논의해서 결론을 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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