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헌법 제51조
"국회에 제출된 법률안 기타의 의안은 회기 중에 의결되지 못한 이유로 폐기되지 아니한다. 다만,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대한민국헌법 제51조다. 이 말은 국회의원 임기가 만료된 때에는, 회기 중 의결되지 못한 의안은 폐기된다는 의미다. 필자는 헌법학자가 아니므로 헌법 제51조의 해석을 두고 논쟁을 벌일 생각은 없다.
헌법에서 임기만료와 함께 의안을 폐기하도록 한 것은, 예를 들어 21대 국회와 22대 국회는 완전히 다른 회의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22대 국회의 경우 300명 국회의원 중 초선의원이 131명으로 43.7%에 이른다. 22대 국회의 대주주는 국회의원을 처음하는 초선의원인 셈이다. 특히 상임위원회의 경우 이전 국회와 연속성이 거의 없다. 국회의원은 보통 2년에 한번 소속 위원회를 바꾸는데, 종전 위원회와 같은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사례가 많지 않다. 이렇게 새로 구성된 국회에서는 당연히 모든 의안의 제안부터 의결까지 새로 하는게 상식이다.
▶민형배 의원 대표발의 「국회법」 개정안
민형배 의원이 대표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은, 21대 국회 임기 중 상임위에서 의결되었으나 본회의에서 의결되지 못한 법안에 대해 22대 국회 상임위에 바로 상정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쉽게 말하면, 21대 국회에서 상임위까지 의결되었지만 최종 폐기된 법안의 경우 22대 국회에서 일종의 인센티브를 주자는 것이다. 어떤 인센티브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현행 국회법 | 민형배 의원 개정안 |
제59조(의안의 상정시기) 위원회는 의안(예산안, 기금운용계획안 및 임대형 민자사업 한도액안은 제외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이 위원회에 회부된 날부터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 기간이 지나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그 의안을 상정할 수 없다. 다만,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로 위원회의 의결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일부개정법률안: 15일 2. 제정법률안, 전부개정법률안 및 폐지법률안: 20일 3. 체계·자구 심사를 위하여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법률안: 5일 4. 법률안 외의 의안: 20일 |
제59조(의안의 상정시기) ①위원회는 의안(예산안, 기금운용계획안 및 임대형 민자사업 한도액안은 제외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이 위원회에 회부된 날부터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 기간이 지나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그 의안을 상정할 수 없다. 1. 일부개정법률안: 15일 2. 제정법률안, 전부개정법률안 및 폐지법률안: 20일 3. 체계·자구 심사를 위하여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법률안: 5일 4. 법률안 외의 의안: 20일 |
② 위원회는 제1항에도 불구하고 의안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제1항 각 호의 기간 중에도 위원회의 의결로 상정할 수 있다. 1.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2. 회부된 법률안이 직전 임기의 국회에서 해당 법률안의 소관 위원회 또는 소관 위원회의 소위원회가 가결, 수정가결 또는 제51조에 따라 제안하였다가 헌법 제51조 단서에 따라 폐기된 법률안과 취지 및 내용이 동일한 조문이라고 인정하는 경우 |
[민형배 의원 발의 국회법 개정안 신·구조문대비표]
국회법에서는 법안이 발의되면 소관 위원회에 회부되어 상정될 때까지 일종의 숙려기간을 두고 있다. 일부개정안은 15일, 제정법안은 20일 등이다. 숙려기간을 두는 이유는 이 시기에 위원들이 해당 법안에 대해 공부하고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이다. 또 회의를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이 숙려기간 중에 국회사무처 위원회에서는 발의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 등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민형배 의원의 국회법 개정안은 이와 같은 숙려기간을 패스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주자는 것이다. 인센티브 대상은 직전 국회에서 상임위 또는 소위원회에서 의결한 법안이나, 국회법 제51조에 따라 위원장이 제안한 의안으로 지정하고 있다. 만약 이렇게 되면 21대에서 상임위 의결 후 법사위에서 계류되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된 법안, 본회의에 직접 부의요구 되었으나 상정되지 못한 법안 등이 22대 국회에서 소정의 절차를 생략하고 상임위에 상정될 수 있다.
▶민형배 의원의 본질적인 착각 또는 오해
상임위에서 의결 후 법사위에서 계류되다가 임기만료로 폐기된 법안을 생각해보자. 이런 사례는 21대국회에서 110건이다. 이 법안들은 무슨 전쟁이나 천재지변에 의해서 불가피하게 처리를 못한 것이 아니라, 21대 국회의원들이 처리를 안한 것이다.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다. 민형배 의원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은데, 실제로는 안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의도적으로 처리를 안한 법안에 대해, 22대 국회에서 어떤 인센티브를 준다는 말은 성립 자체가 안된다.
왜 처리를 안했을까? 이건 사안별로 다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해서 이야기 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어느 한쪽에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특허침해소송에서 변리사가 변호사와 공동으로 대리할 수 있도록 한 변리사법 개정안'은 산자위에서 의결되었으나 법사위에서 748일동안 발이 묶여있다가 21대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이 법안에 대해서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두 반대했다. 아마 변호사의 업역을 침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국민의힘 법사위원들이 함께 뜻을 모아 처리를 안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다른 법사위 계류·폐기 법안도 대략 사정이 유사하다. 21대 국회의원들이 처리를 안하기로 결정한 법안에 대해 22대 국회의원들이 특별히 배려해야 할 이유는 없다.
▶현상은 잘 짚었는데 원인진단이 틀렸다
"행정력이 낭비되고 입법의 시의성의 상실되고 있다. (그래서 이 국회법 개정을 통해) 국회의 효율성과 생산성 강화로 성과를 이끌어 내려고 한다" 민형배 의원의 동 국회법 개정안 제안설명에 담겨있는 내용이다. 지금 국회의 현실·현상을 정말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는데, 문제는 원인 진단이 틀렸다. 국회의 행정력 낭비, 입법의 시의성 상실, 효율성과 생산성 저하의 원인은 임기만료폐기 법안이 아니라 국회의원의 무분별한 법안 과잉발의에 있다. 민형배 의원은 21대국회에서 무려 325건의 법안을 발의한 당사자이기도 하다.(325건 중 268건은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진심으로 국회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고자 한다면 법안 발의 건수로 경쟁하는 국회의 그릇된 풍토 먼저 바꿔야 한다.
좀 의아하지만 조국 의원, 이언주 의원, 허영 의원 등도 민형배 의원의 국회법 개정안에 공동발의자로 함께 참여했다. 아무튼 21대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이 법령이나 제도를 통해 22대 국회의원들의 법안 심의·의결권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면 그 자체로 위헌 논란의 소지가 있다. 그런 면에서 민형배 의원의 동 국회법 개정안은 초헌법적인 발상이라 생각하며, 예상컨데 이 법안은 22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기왕 발의가 된 이상 충분히 검증하고 숙고하여 스스로 철회하는 것은 어떨까.
'22대 국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해민] 버스는 이미 떠났는데...방통위법 개정안 (0) | 2024.06.26 |
---|---|
[김승수] 이건 표절인데...교통사고처리 특례법 개정안 (0) | 2024.06.26 |
[배현진] 또 이 법이야? 21대국회 임기만료 폐기법안의 재활용 사례 (0) | 2024.06.19 |
[권영세] 남북관계 '후퇴'를 위한 남북관계 발전법 개정안 (0) | 2024.06.18 |
[한준호] 실수라면 문제, 고의라면 더 문제_방통위법 개정안 (0) | 2024.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