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로교통법」 개정안(서지영)
2023년 12월 기준,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 체납액이 1조 450억원, 그 중 5년 이상 장기 체납된 금액이 6,630억원이라고 한다. 그냥 안내고 버티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인데, 이들의 운전면허 갱신을 거부하여 체납된 범칙금과 과태료의 수납율을 높이자는 법안이 발의되었다. 그럴듯해 보이는데, 이 법안은 21대 국회에서도 발의되었다가 폐기되었다. 왜 폐기되었을까?
▶「도로교통법」 제87조(운전면허증의 갱신과 정기 검사)
도로교통법 제87조에서는 운전면허 갱신 등에 대해서 규정하고 있다. 최초 운전면허 갱신은 보통 면허증을 받고 10년 뒤에 하는데, 고령자나 장애 여부를 기준으로 조금씩 다르다. 아무튼 제87조에서는 운전면허증 갱신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을 특정하고 있는데, ①75세 이상인 사람 중 '교통안전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 ②정기 적성검사 대상자로서 이를 받지 않거나 합격하지 못한 사람이다.
▶서지영 의원 발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서지영 의원이 발의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위 87조(운전면허증의 갱신)에서 갱신을 받을 수 없는 사람에 ③도로교통법을 위반하여 부과된 범칙금 또는 과태료를 납부하지 아니한 사람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유는, 체납한 범칙금 또는 과태료가 있는 경우 운전면허증 갱신을 거부할 수 있게 해서 과태료 수납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배경
이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김용판 의원이 발의했던 법안이다. 그런데 국토위 소위에 회부만 되었다가 별도의 논의 없이 임기만료로 폐기되었다. 당시 위원회 검토보고서를 보면, 크게 두 가지 쟁점이 있다.
▶부당결부금지의 원칙
부당결부금지 원칙이란, 행정기관이 행정권을 행사하는데 있어서 상대방에게 이와 실질적인 관련이 없는 의무를 부과하거나 그 이행을 강제하면 안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예를 들면 오토바이를 음주운전 했다는 이유로, 이륜자동차와 무관한 1종 대형면허를 취소한 처분은 위법하다는 것이다.(대법원 판례 1992.9.22. 91누8289) 쉽게 말하면, 아이들의 훈육을 위해 "너! 숙제 안했으니까 밥먹지마!" 이런게 가능할지 몰라도, 법과 행정은 이래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이 법안의 경우 「도로교통법」 위반에 따라 부과된 범칙금·과태료가 운전면허증 소지와 직접 관련이 없을 수 있는데, 이를 구분하지 않고 면허갱신을 불허하는 것은 부당결부금지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갱신 안해도 면허는 유지
운전면허를 갱신하지 않으면 면허가 취소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제2종 운전면허의 경우 면허증을 갱신하지 않더라도 과태료만 부과될 뿐 면허가 취소되지는 않는다. 전체 운전자의 약 38%가 2종면허 소지자임을 감안하면, 운전면허 갱신을 거부하는 방식으로는 체납 과태료 징수에 별 실효성이 없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가 있었다.
▣ 법안 발의 전 충분한 검토를
21대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23,655건이다. 22대 국회에서 발의하는 상당수의 법안이 이미 21대에서 발의되었던 것들이다. 국회에는 각종 검토보고서와 속기록에 그 법안들에 대한 의견과 분석이 이미 있다. 법안을 새로 발의할 때는 최소한 이전 국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읽어보고 충분히 고민한 뒤에 다시 발의하는게 옳다. 국회의원은 그냥 무책임하게 법안을 발의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발의한 법안을 책임있게 처리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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